본문 바로가기
  • 일상 그리고 나의 이야기
문학

가정

by Der Clou 2020. 3. 22.

가정 / 박목월

 

 

지상에는

아홉 켤레의 신발

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

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

알전등이 켜질 무렵을

문수(文數)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.

 

내 신발은

십구문반(十九文半)

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

그들 옆에 벗으면

육문삼(六文三)의 코가 납작한

귀염둥아 귀염둥아

우리 막내둥아

 

미소하는

내 얼굴을 보아라

얼음과 눈으로 벽(壁)을 짜올린

여기는 지상

연민한 삶의 길이여

내 신발은 십구문반(十九文半).

 

아랫목에 모인

아홉 마리의 강아지야

강아지 같은 것들아.

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

내가 왔다.

아버지가 왔다

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.

아니 지상에는

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

존재한다.

미소하는

내 얼굴을 보아라.